코로나가 심해진 요즘, 회사에서도 재택근무를 권고하고 있다. 개발자가 직업인지라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공간의 제약 없이 어디서나 작업할 수 있어서 좋다. 물론 그 '장소'가 업무 하기 편한 곳이면 가장 베스트다. 그러나 층간 소음을 피해 이사 온 지금의 집이 더욱더 큰 층간 소음 문제가 있다는 건 그리 유쾌하지 못한 사실이다.
며칠 전 그런 기사를 읽었다. 아내와 살기 싫었던 한 남자가 은행에서 돈을 훔치고 경찰에게 자수를 했다. 집보다 감옥이 더 낫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남자에게 판사는 '가택연금'이라는, 사탄도 울고 갈 판결을 내린다. 지금 내 꼴이 딱 그거다. 아랫집이 좀 잠잠해지는(심지어 층간소음의 원인은 아랫집이다) 시간에 들어오고 싶어서 회사에서 놀다가 들어오는 나에게 재택근무라니. 심지어 코로나 때문에 카페에 갈 수도 없다. 이리저리 진퇴양난이다.
물론 지금은 적당히 적응한 것 같다. 활동이 빈번해서 소음이 많이 일어나는 이른 저녁 시간대에는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마음을 비우니 처음보다는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그러나 적지 않은 돈을 보증금으로 내고 들어온 이 집에서, 서울의 기형적인 부동산 구조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근데 이 집에 살면 살수록 소음에 대한 민감도는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나는 예민한 편이다. 소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사소한 것에 잘 반응한다. 생활환경이 불편한 것도 자주 개선하려고 한다. 가끔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정도가 지나칠 때가 있다. 덕분에 과민성 대장 증상이라는 혹도 따라붙은 것 같다.
반면에 내 동생은 그런 것에 둔감한 편이다. "사는 게 사는 거지" 하며 불편한 게 있어도 잘 느끼지 못한다. 소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초기부터 발 망치 소리를 바로 캐치했지만 동생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서야 그것을 인지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시 아랫집에서 큰 소리가 계속 나면, 나와 마찬가지로 거실에 나와서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하고 방으로 쓱 들어간다.
덧붙여서, 내 여자 친구도 상당히 둔감한 편이다. 처음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그리 시끄러운 걸 몰랐다고 한다. 물론 여자 친구는 집에 혼자 있지 않고 나와 이야기를 하거나 티브이를 보거나 요리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소음에 집중을(이 말도 조금 웃기다)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관찰한 바로는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민감도가 낮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냈을 무렵, 층간 소음으로 심란해져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기 위해 불교 관련 서적을 읽고 있었다. 주로 나오는 말들이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와 같은, 다시 말하자면 원효대사 해골물 같은 소리였다. 평소 같았으면 쓱 훑고 넘어갔을 테지만 그 날따라 그 구절이 왠지 와 닿았다.
사람마다 소리의 소음 정도를 다르게 느끼듯이, 나 또한 소음에 귀가 트여서 더 예민하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아랫집에서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일부러 이러나? 하는 생각을 종종 했던 것 같다. 있지도 않을 망상을 혼자 만들어가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또한, "모든 게 다 욕심이다"라는 구절도 있었다. 자꾸 더 넓은 집, 좋은 집으로 가려고 욕심부리다 보니 꼼꼼하게 체크 안 한 내 과실도 있었다. 그리고 "이 돈 주고 이 정도 삶의 질이라니 불공평하다"라는 생각도 자꾸 스트레스받게 하는 원인 중 하나였다. 며칠 전부터 그냥 받아들이고 좋은 면만 보고 있는데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나는 어차피 전셋집이라 기간만 채우고 나가면 되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매였으면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데 만약 그랬으면 정말 골이 빠개졌겠지. 그리고 아랫집도 전셋집이라는 점. 계약 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음 세입자는 조용한 1인 가구가 들어오기를 빈다.
두 번째로, "이왕 이렇게 된 거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책도 많이 읽자"라고 생각했다. 한창 달려야 할 시기이니 재입대(?)했다고 생각하고 조금 힘들게 살아보자 였다. 실제로 근 몇 달간 퇴근 후 공부, 독서를 하며 상당히 알차게 잘 살고 있는 듯해서 뿌듯하다.
생각해보니 그 외에도 좋은 점들이 정말 많았지만 일일이 나열하지는 않겠다. 혹자는 궁극적 자기 합리화라고 할 수 있지만, 불 만인점들 하나하나씩 투덜거리다 보면 결국에는 본인 손해다. 화가 나고 불합리한 상황에도 언제나 밝은 면은 있기 마련이다. 어두운 면만 보면 한도 끝도 없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당분간은 좋은 생각, 행복 회로만 돌려야겠다. 조만간 분명히 멋진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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