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길을 걷다가 우연히 스타벅스를 보았다. 크리스마스가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빨간색과 초록색이 적당히 섞인 매장의 인테리어는 누가 봐도 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회사에 가야 했지만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시즌 메뉴를 주문한 뒤, 한두 시간 정도 멍 때리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출근길에 마주친 스타벅스처럼, 도시에는 겨울이 왔음을 알려주는 요소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우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상점들이 하나둘씩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카페는 시즌 메뉴가 추가되고, 옷가게의 쇼윈도에는 겨울 신상품들이 전시되는 것이다. 그리고 겨울의 매장 인테리어는 여름보다 더 화려하게 장식된다. 아마 야외보다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사람들이 송년회 약속을 하나둘씩 잡기 시작 할 때쯤엔, 온 동네에서 캐럴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나는 겨울이 좋다. 추운 날씨가 좋다기 보다는,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피부에 전해지는 극세사 이불의 포근함이라던지, 높은 곳에서 밤새 내려앉은 눈 덮인 풍경을 보는 것, 영화관의 더운 공기와 카펫의 감촉, 찬바람을 맞으며 등불 축제를 보는 것, 카페에서 마시는 달콤한 핫초코, 귤, 어묵 국물 등. 그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요소 들은 많이 있지만, 유독 겨울에 그런 것들이 더 많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글쎄,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도 겨울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생명이 태동하는 봄, 역동적인 여름, 그리고 모든것이 시들어가는 가을과 달리 겨울은 꽤나 정적이다.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오랜 추위가 지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경험들이 꽤 자극적으로 다가온다. 마치 무채색으로 칠해진 배경에 원색의 물감을 떨어뜨리는것 같다. 때문에 다른 계절과 달리 조금 더 선명한 기억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해가 바뀌고 또다시 찬바람이 불면, 우리는 무의식의 영역 뒤편에서 작년에 느낀 원색의 기억들을 끄집어 내게 된다. 다시 말해 짙은 향수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됐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느끼는 겨울은 그렇다. 뭐 그런 걸 떠나서, 귤이나 핫초코가 어디로 도망가는 건 아니니까. 조금 더 날이 추워지면 이제 "겨울이 싫어졌다"라고 번복할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낭만을 느낄만하다. 그런 의미로 오늘은 집에 들어가서 겨울 분위기 물씬 풍기는 캐럴을 들어야겠다. 아니면 나 홀로 집에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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